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리페 4세 (문단 편집) ==== 두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==== [[파일:Mariana_of_Austria.jpg|width=400]] [[1634년]] [[12월 22일]] ~ [[1696년]] [[5월 16일]] : 페르디난트 3세의 딸. 이 경우 원래는 위의 발타사르 카를로스와 결혼을 해야 했지만 요절하는 바람에 펠리페와 결혼한다. 참고로 이 사람의 어머니인 마리아 아나는 펠리페의 '''여동생'''이고 페르디난트와 펠리페는 사촌이니 [[펠리페 2세]]처럼 '''3촌 겸 5촌'''과 결혼한 것이다. 여담이지만 루이 14세와도 사촌이다. 예비 남편이 죽자 겨우 14살의 나이로 29살이나 많은 --늙다리-- 외삼촌 겸 예비 시아버지와 결혼을 한다.[* 하지만 당시 스페인 왕실과 통혼할 만한 가톨릭 신부도 딱히 없었던데다 후계자가 다급해진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을 것이다.] 의붓딸인 마리아 테레사와는 겨우 2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. 이쪽도 근친혼이 상당히 이루어진 농축이라 외모가 추하다. 남편은 어린 그녀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정부들에게만 빠져지냈다고 한다.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 5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이 중 2명만 성인으로 성장했다. 그녀의 아들인 카를로스 2세는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자주 거론되는 끝판왕이다. 마리아나는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며 원정대에 자금을 지원했는데 [[북태평양]]의 [[북마리아나 제도|마리아나 제도]]는 이때 그들이 찾은 섬들이다. * 제 7왕녀: '''[[마르가리타 테레사]]''' : [[1651년]] [[7월 12일]] ~ [[1673년]] [[3월 12일]] 신성 로마 제국 황제 [[레오폴트 1세]]의 황후. 어린시절 천사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아버지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. 공주의 모습은 약혼자이자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에게 보내지기 위해 초상화로 많이 그려졌다. 궁정화가 [[디에고 벨라스케스]]가 그린 유명한 그림 '시녀들'의 주인공이 바로 이 공주이다. 다만 역시 다른 자녀들처럼 유전병 때문에 주걱턱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고 하며, 22세의 나이로 단명했다. * 제 8왕녀: 마리아 암브로시아 : [[1655년]] [[12월 7일]] ~ [[1655년]] [[12월 21일]] * 제 3왕자: 펠리페 프로스페로 : [[1657년]] [[11월 28일]] ~ [[1661년]] [[11월 1일]] 펠리페 4세의 후계자 발타자르 카를로스가 사망하고 11년 만에 태어난 남자 후계자이지만 몸이 약해 4살의 나이로 사망한다.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죽고 5일 뒤 또 다른 남자 후계자인 카를로스 2세가 태어난다. 다행인지 아닌지는 [[카를로스 2세]] 항목 참조. * 제 4왕자: 토마스 카를로스 : [[1658년]] [[12월 23일]] ~ [[1659년]] [[10월 22일]] * 제 5왕자: '''[[카를로스 2세]]''' : [[1661년]] [[11월 6일]] ~ [[1700년]] [[11월 1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